스티브(스티븐) 잡스, 혁신의 대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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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스티브(스티븐) 잡스, 혁신의 대명사

by InsightMan 2023. 4. 3.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정치와 교육에 관심을 가졌으나, 컴퓨터 디자인에 끌려 대학을 중퇴하며 사업가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Apple을 창업하여 대성공을 거둔 그는, Macintosh와 iPod, iPhone을 통해 기술 혁신의 대명사가 되었고, 세계를 바꾸는 혁신적인 제품과 디자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2011년 췌장암으로 사망하면서 그의 삶은 더 이상 길지 않았습니다.

혁신의 대명사,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생애 :

스티브 잡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태어나 시리아계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는 시리아 정치학부 출신의 이민자로, 스티브는 출생 후 입양되어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키워졌다. 폴 잡스 부부는 스티브를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키웠지만, 어렸을 때 잡스는 부모 속을 많이 태우는 아이였다.
 
스티브는 고등학교 때 전자공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사업가 인생이 시작되었고, 휴렛팩커드에서 여름 인턴을 하며 Apple을 같이 세운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났다. 그 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하였지만 대학생활에 흥미가 없어 중퇴하고, 많은 교양 수업을 청강했다. 스티브는 동양 철학에 관심을 보였으며, 불교의 선사상에 심취하여 수행을 한 적도 있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 :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정치와 교육에 관심을 가졌으나, 아타리에서 게임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면서 컴퓨터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워즈니악과 함께 컴퓨터 제작에 착수하여 1976년 Apple I을 롤아웃했다. Apple I은 단순한 기판과 실리콘칩 덩어리로 이루어졌지만, 잡스의 유창한 말과 대인배적인 마인드 덕분에 판매에 성공했다. 이후 Apple II와 Apple II Plus 등의 모델이 출시되면서 잡스는 대성공을 이루었다.

 


스티브 잡스는 Apple II, Apple II Plus 이후 위기에 봉착했다. Apple II는 코모도어 64에 도전을 받았고, Apple III는 망해 버렸다. 그러나 이후 스티브 잡스는 Lisa 프로젝트와 Macintosh 프로젝트를 동시에 시작하며, 자신을 쫓아낸 Lisa 프로젝트에 대한 경쟁심이 불타오르는 등 Macintosh에 지대한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Lisa 팀과 Macintosh 팀, Apple II 팀은 서로 경쟁하며 사내 분위기는 악화되었고, 이는 스티브 잡스의 위치를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이사회에서 스티브 잡스를 쫓아내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이 조치를 악의적으로 설명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는 스티브 잡스 자신의 독선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성격이 한몫하여 발생한 결과였다.


스티브 잡스는 Apple을 나온 후 NeXT라는 회사를 차린 후 워크스테이션 개발에 매진했지만 시장에서 실패하고 1993년 생산을 완전 중단했다. 그러나 NeXT는 기술적으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고, NeXT의 운영체제인 NeXTSTEP이 좋은 평가를 받아 훗날 Apple이 내놓고 있는 모든 스마트 장치와 컴퓨터 운영체제들의 기반이 되었다.
 
이후 Apple의 정통 데스크톱 라인인 Power Mac과 인텔로 넘어와서의 Mac Pro가 이 저가형 워크스테이션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1986년에 스티브 잡스는 NeXT 프로젝트를 위해 CG를 담당하고 있던 픽사를 인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잡스는 픽사에 대해 거의 간섭하지 않아 창작팀 직원들은 잡스를 "보기 드물게 관대한 투자자"로 묘사했다. 픽사는 이후 토이 스토리를 통해 대성공을 거두었고, 잡스가 보유하고 있던 픽사의 지분 80%의 가치는 1조 원을 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잡스는 실패한 CEO에서 차세대 테크 산업의 리더로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 2006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주식 맞교환 방식으로 74억 달러에 픽사를 인수하였고, 이로 인해 스티브 잡스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 지분의 7%를 보유하게 되면서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2012년에는 픽사의 본사 빌딩 이름이 "스티브 잡스 빌딩"으로 명명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Apple로 복귀한 1997년, Apple은 10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잡스는 제품의 종류를 줄이고 꼭 필요한 사업을 제외한 기타 사업에서 손을 떼며 동시에 직원 3,000명을 해고하여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이로 인해 1년 만에 3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이 시기 Apple의 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제품은 1998년부터 발매된 iMac G3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2000년 CEO로 복귀하면서 Apple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고, 이후 iMac G4와 교육용 eMac을 출시하며 성장해 나갔다. 2001년 스티브 잡스가 세계 시장에 iPod을 출시하였지만, 기존 MP3 플레이어와 경쟁하면서 초기 호응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2003년 iTunes Store와 iTunes for Windows의 출시로 일반 컴퓨터에서도 사용 가능해진 iPod 4세대부터 인기를 얻게 되었고, 2005년 iPod nano의 출시로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아이리버와 같은 경쟁 업체들보다 클릭휠 인터페이스와 디자인, iTunes Store 서비스로 iPod는 성공할 수 있었다. 또한, 음악계와 일반인들 모두에게 큰 호응을 받은 iTunes Store는 현재도 스마트 장치에서 MP3 음원을 판매하고 있으며, 1억 5,000만 곡 이상의 노래를 매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을 달리던 중 스티브 잡스는 2004년 췌장암을 진단받게 되었지만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섬세포암이었기에 성공적으로 치료되었다.
 
2007년 6월 29일, 스티브 잡스는 "Today, today, Apple reinvents the phone."라는 말로 iPhone 출시를 선언했다. iPhone은 휴대폰, mp3플레이어, 인터넷을 하나로 합친 혁신적인 제품으로, 기존 스마트폰의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였다. 첫째는 Multi-touch 유저 인터페이스, 둘째는 앱 중심의 직관적인 유저 인터페이스, 셋째는 OS X을 iPhone에 도입한 것이다. iPhone은 610만 대 이상을 판매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새로 정립했다.
 
 

세상을 밝힌 별이 지다

2000년대 이후 스티브 잡스의 건강은 악화되어 췌장암 수술을 받았고, 그 이후에도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 Apple은 주가하락 등을 이유로 잡스의 건강 이상설을 부인해왔지만, 2011년 1월에 잡스가 스위스로 병가를 갔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다시 그의 건강을 우려하는 추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2011년 8월 25일, 스티브 잡스는 CEO직에서 사임하고, 2011년 10월 5일,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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