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 전설적인 포수의 삶과 독립 화신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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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홍범도 : 전설적인 포수의 삶과 독립 화신의 투쟁

by InsightMan 2023. 3. 26.

홍범도는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의병대장으로,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초기 생애부터 독립운동과 전투의 세계에서 활약한 모습, 그리고 이후 러시아에서의 삶과 사후 유해 귀환까지 홍범도의 전설적인 포수의 삶과 독립 화신의 투쟁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의병대장으로, 전설적인 스나이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초기 생애부터 독립운동과 전투의 세계에서 활약한 모습, 그리고 이후 러시아에서의 삶과 사후 유해 귀환까지 다루는 이야기 입니다.

홍범도 초기 생애

홍범도는 1868년에 평안남도 평양부 서문 내의 무열사 앞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아버지는 그가 9살이 되는 해에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해 어린 홍범도는 자신의 뿌리조차 모른 채 다른 양반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게 되었다. 10대 중반에 평양 감영의 나팔수로 입대하여 탈영하고 금강산 신계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그후 홍범도는 신계사에서 교육을 받으며 이순신 등 한국사를 배우게 되었다. 이후 홍범도는 이옥구를 임신시키고 함께 신계사를 떠나 북청으로 가던 중에 건달패들을 만나 헤어졌다. 그러나 이후에 다시 아내와 자식을 만나 북청에서 삶을 시작했다. 이후 홍범도는 제지소에서 일하다가 고용주를 살해하고 도주하여 10년 동안 사냥꾼으로 생활하다가 1895년 을미의병 발생 시기까지 평범한 삶을 살았다.

 

 

스나이퍼 홍범도

홍범도는 놀라운 사격 실력을 가진 스나이퍼로 포수 권익 단체 '포계'를 창설하고 대장이 되었다. 1895년 을미의병 발생 직후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정미의병이 시작되자 대규모 의병대를 이끌고 전투를 벌였다. 일제 강점기 도래 후 연해주로 망명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공산주의 독립운동 단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홍범도는 전설적인 스나이퍼로, 많은 일본군을 사살했다. 그의 의병은 대부분 함께 사냥 일을 하던 강원도 산포수들이었다. 홍범도는 크고 작은 37회의 전투를 벌였으며, 아내와 두 아들도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희생되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면서, 홍범도는 1911년 연해주로 망명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공산주의 독립운동 단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홍범도는 연해주 소재 조선 무장독립운동 단체와 협력하여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주요전투

함경남도 혜산진에서의 유격전으로 명성을 얻은 홍범도는 1920년 봉오동에서 결성된 대한북로군독부 예하 북로 제1군 사령관으로 선출되었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와 4개월 뒤 청산리 전투에서 활약했다. 홍범도는 일본군 보고서에서도 현지 주민들의 호감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홍범도가 소련군과 협력한 점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언급되지 않거나 간단하게 다루어졌다. 김좌진과 홍범도 부대의 공로는 반반이며, 일본군을 서로 싸우게 한 작전은 홍범도가 주도했다. 육군대장 이범석 초대 총리 겸 국방장관이 쓴 <우등불>에서는 홍범도가 봉오동에서 큰 전공을 세웠지만 청산리에서는 일본군의 군세에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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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의 투쟁

1921년, 홍범도는 독립군 통합을 위해 대한의용군과 고려혁명군에 협력을 시작했다. 1922년, 일본의 간섭군 철수 조건으로 항일무장투쟁 단체가 해산되고 홍범도 이하 독립군은 무장해제되었다. 홍범도는 결국 러시아에 남아 소련 시민으로 살며 두 번째 부인과 재혼했다.

 

1922년, 홍범도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하였고, 블라디미르 레닌으로부터 은제 마우저 C96 권총을 선물받았다. 1923년, 하바로프스크에서 사할린부대 출신 김창수와 김오남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부상했지만, 레닌이 선물한 권총으로 이들을 사살하고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유해봉환

북한은 홍범도 유해 송환에서 명분이 약했고, 그들의 정통성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북한은 홍범도의 유해를 평양으로 모시려 하지 않았으며, 김일성은 자신의 항일 업적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2021년 8월, 청와대는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 유해를 귀환시킬 예정임을 발표했다. 배우 조진웅도 특사단에 동행하며, 이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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