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부터 대선 출마까지, 이재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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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출생부터 대선 출마까지, 이재명의 삶

by InsightMan 2023. 3. 26.

 

이재명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어린 시절 가난과 가족의 사망 등을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교육을 받고 변호사가 되어 사회운동가 활동을 하였다. 이후 2010년과 2014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당선되어 시정을 이끌었고, 201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최소 차이로 낙선하였다. 이재명의 출생부터 대선 출마까지 알아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010년과 2014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당선되어 시정을 이끌었고, 201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최소 차이로 낙선하였다. 이재명의 출생부터 대선 출마까지 알아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출생

이재명은 출생일이 정확히 기록되지 않아 1963년 음력 10월 23일로 추정된다. 어린 시절 가난으로 인해 어머니가 출생일을 기억하지 못해 적당한 날짜를 점쟁이에게 물어 정했다. 이재명은 2006년 회고록에서 어머니가 말한 출생일을 믿지 않는다고 밝히며 실제 생일은 모른다고 말했다.

 

그 결과 출생신고는 늦어졌고, 이재명의 호적상 생년월일은 1964년 12월 22일이다. 이 날짜는 독립운동가 이재명의 처단일과 같은 날로, 일부러 맞춰서 정한 것이다. 이재명은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 도촌동에서 태어났으며, 원래는 5남 4녀 중 일곱째였지만 누나 둘이 요절하면서 다섯째가 되었다.

 

 

어린시절 

이재명은 어렸을 때 안동 산골에서 살며 초등학교에 다녔지만 걸어서 2시간이 걸려 결석이 많았다. 그 때의 꿈은 교사였으나 선생님으로 인해 많이 맞아서 복수감정으로 교사가 되어 애들을 때려보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성남으로 이사를 와 가난으로 인해 공장에서 소년공으로 일하며 공부를 못 했다. 이에 아버지와 갈등하며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아버지도 가난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직장생활

첫 직장에서 염산과 황동을 다루는 목걸이 공장에서 일했으며, 두 번째 직장에서는 붕산으로 땜을 하는 공장에서 일했지만 사장의 야반도주로 월급을 빼앗겼다. 세 번째 공장에서는 고무 조각이 손가락에 박혔으며, 파편이 아직도 박혀있다고 한다. 네 번째 직장에서는 작업반장의 구타로 인해 흉터와 난청, 부분적 청각 장애를 얻었다.

 

작업반장이 고졸이었던 것을 보고 공부를 시작한 사람은 락카실에서 몰래 책을 봤다. 벤젠과 아세톤 냄새 때문에 후각을 잃었고, 이후 변호사가 되어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치료를 받았지만 후각은 회복하지 못했다. 17살 때 우울증과 장애로 인해 자살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어머니의 손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중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통과하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 입학

이재명은 1982년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대학 진학이 어려웠던 가운데,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 덕분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어머니가 사주신 제복을 입고 대학에 갔으며, 이재명의 셋째 형도 대입 시험을 치르게 하여 이재명과 함께 대학을 다니게 했다. 이후 이재선은 건국대학교로 진학하여 공인회계사가 되었다.

 

 

사회운동가 활동

이재명은 장애인이라 취업이 어려워 사법시험을 도전하게 되었고,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이전에 청소부로 일하던 아버지가 위암으로 사망하는 등 가난과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노동자와 농민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하고, 현 부인과의 결혼을 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전 재산을 탕진하게 되었지만 이를 계기로 실물경제와 금융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2004년, 성남시민들이 공공 의료원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발의한 조례가 심의보류 결정을 받았을 때, 이재명은 주민 대표 중 한 사람으로 항의하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공용물건손상죄를 선고받았다. 이때 당시 이재명이 분하다는 듯 울부짖는 표정이 매우 강렬해 화제가 되었다

 

 

변호사 활동

이재명은 성남시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며, 민주화 운동가나 범죄 용의자들의 변호를 맡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사저널의 보도는 이재명이 수임한 사건들이 인권보호와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재명의 인권변호사 자격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정계 입문

이재명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여 성남시장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고, 이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탈락하였다. 정치 생활 초기에는 정동영 지지자로 알려졌으며, 한동안 정세균계 정치인으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성남시장 이재명

이재명은 2010년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두 차례에 걸쳐 당선되었다. 이재명은 모라토리엄 선언, 시 재정 건전화, 공무원 매관매직 인사관행 개선 등 다양한 친서민 정책을 시행하면서 시장 거래 가격보다 비싼 '표준품셈' 방식으로 건설 공사비를 산정하는 중앙정부 지침에 반대하기도 했다. 이재명은 성남시장 재직 당시 공약 이행률 94.1%를 기록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개표 초반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호남 지역의 표가 풀렸지만, 이후 보수 기반의 강남 3구와 영남 지역의 표가 대거 풀리면서 점점 격차가 줄어들었고, 개표율이 85%를 넘긴 시점에서 윤석열 후보의 당선 유력이 발표되어 이재명 후보는 패배를 인정하고 승복을 선언했다. 개표 결과는 0.73%p 차이로, 최소 격차로 낙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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